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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한일 친선 대항전에서 펼쳐진 조훈현 9단과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의 대국은 그야말로 스타일의 정면 충돌이었습니다. 실리를 중시하는 조훈현과 대모양을 꿈꾸는 다케미야, 두 천재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명국을 다시 해설합니다.
1980년대 초반, 한국과 일본 바둑계는 서로 다른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실리를 중심으로 한 정확한 바둑을 추구했고, 일본은 모양을 크게 벌려가는 '우주류' 스타일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친선 대항전이라는 무대에서 조훈현 9단과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 마주했습니다. 한 사람은 철저한 계산과 수읽기로 무장한 실리의 귀재였고, 다른 한 사람은 거대한 모양을 꿈꾸며 대국을 이끌어가는 예술가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역사적인 대국을 바둑월간 1980년대 해설 스타일로 되살려보겠습니다. 조훈현 9단의 날카로운 침투와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의 화려한 모양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수순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감상해보겠습니다.
초반은 예상대로 다케미야 9단이 판을 넓히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삼삼 침입을 피하고, 중앙을 중심으로 거대한 모양을 꿈꾸었습니다.
다케미야 9단은 백으로 좌상귀에 화점, 우상귀에 소목을 두며 천천히 판을 넓혀갔습니다. 그에 맞서 조훈현 9단은 흑으로 삼삼 침입을 고려하지 않고, 하변과 우변에서 실리를 차곡차곡 쌓아나갔습니다.
초반 흐름만 보면 다케미야 쪽이 훨씬 공간이 넓어 보였지만, 조훈현 9단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양은 커 보이지만, 허술한 곳을 파고들면 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훈현 바둑의 무서운 점이었습니다. 판을 키우게 놔두되,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반, 다케미야 9단은 중앙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백 대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 모양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조훈현 9단은 마침내 침투를 시작합니다. 우상귀 백 세력을 향해 과감하게 들어가는 한 수, 흑 65수. 이 수는 단순한 침입이 아니라, 다케미야의 모양 전체를 흔드는 '침투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케미야 9단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중앙을 지키며 흑돌을 압박하려 했지만, 조훈현 9단의 수읽기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흑 69수에서 좌상귀 백을 끊는 수순을 선택하며, 흑은 중앙과 좌변을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바둑월간 해설에서도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조훈현 9단의 침투 수순은 마치 레이저와 같았다. 다케미야 9단의 모양은 한순간에 구멍이 뚫렸다."
끝내기에 들어서면서 다케미야 9단은 중앙 모양을 간신히 연결해나갔지만, 조훈현 9단은 좌변과 우변에서 끊임없이 실리를 쌓아갔습니다.
흑 115수, 조훈현 9단은 다시 한 번 결정적인 끝내기를 시도했습니다. 좌상귀 백 모양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30집 가까운 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케미야 9단은 백 118수에서 중앙을 연결하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승부는 기울어 있었습니다. 바둑월간 해설에 따르면,
"다케미야 9단의 꿈은 컸으나, 조훈현 9단의 현실적 수읽기 앞에 무너졌다."
최종 결과는 흑 5집반 승. 조훈현 9단은 실리 바둑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한국 바둑의 저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이 대국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서로 다른 바둑 철학이 부딪히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모양을 크게 그리고 꿈을 꾸던 다케미야 마사키 9단. 작은 실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현실을 읽어내던 조훈현 9단. 두 사람의 바둑은 서로 달랐지만, 그 안에는 모두 바둑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1980년대 바둑월간 최신호는 이 명국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바둑은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라, 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오늘 다시 조훈현 9단과 다케미야 9단의 명국을 돌아보며, 그 시절 바둑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